정진(精進) 수행2014. 9. 25. 11:07

 

§(763) (게송)법계진시비로사~ /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 / ‘한 생각’을 올바르게 단속을 해야 / (게송)삼계진로여해활~.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정말 알뜰히 정진하는 사람은 결제∙해제가 따로 있을 수가 없고, 입선∙방선 시간이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바로 1년이 되고, 3년이 되고,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정진을 알뜰히 할 줄 아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가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눈을 통해서 보기도 하고, 귀를 통해서 듣기도 하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기도 하고, 혀를 통해서 맛을 보지마는 그 찰나찰나를 그리 쫓아가지 말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는 바로 거기에 정말 깨달음의 길이 거기에 통하는 것입니다.


**송담스님(No.763)-2013(계사년) 동안거결제 및 백일기도입재(11.17)-16분. (용763)


약 16분.


법계진시비로사(法界盡是毘盧師)요  수도현우귀여천(誰道賢愚貴與賤)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애경노유개여불(愛敬老幼皆如佛)하고  상상엄식적광전(常常嚴飾寂光殿)이로다
나~무~아~미~타~불~

법계진시비로사(法界盡是毘盧師)요, 육도법계(六途法界)가 전부 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스승이시다.
수도현우귀여천(誰道賢愚貴與賤)인고. 누가 어질고 어리석으며 누가 귀하고 천하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중생(衆生)의 눈으로 보면 전체가 흥망성쇠(興亡盛衰)요, 생로병사요, 모두가 차별 경계(境界) 속에서 좌왕우왕(左往右往)하면서 윤회의 업(業)을 짓는 것에 불과하지만은, 정말 바른 눈을 떠서 보면, 온 법계가 전부 비로자나 법신체(法身體)요,
그러니 무엇을 누구를 가리켜서 어질다 어리석다, 무엇이 귀하고 천하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느냐!

애경노유개여불(愛敬老幼皆如)이요, 나이가 많은 분은 공경하고 어린 사람은 사랑하고 — 공경하고 사랑하기를 다 부처님처럼 부처님을 뵈온 것처럼 그렇게 공경하고 사랑하면,

상상엄식적광전(常常嚴飾寂光殿)이다. 항상 일체처 일체시에 비로자나 부처님이 계시는 적광전(寂光殿)을 장엄(莊嚴)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오늘 삼동(三冬) 결제일을 맞이해서 방금 조실스님의 법문을 우리는 경청을 했습니다.
산승(山僧)이 더이상 법을 설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여기에 올라 오지 않고, 여러 도반들에게 앞으로 석 달 동안 정말 신심(信心)과 분심(憤心)과 화두에 대한 의단(疑團)으로 여법(如法)하게 정진하자고 여러분께 당부하고 다같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서 정진하자고 그런 말씀을 여러분께 할려고 이 자리에 올라왔습니다.

이 자리에는 용화사 법보선원 11명, 인제 용화선원 52명, 광주 용화선원 11명, 용주사 중앙선원 19명, 망월사 천중선원 22명, 약사암 11명, 위봉사 위봉선원 24명, 승련사 선원 15명, 원효사 송나선원 17명, 회룡사 선원 18명, 세등선원 21명, 복전암 복전선원 27명, 아산 대윤사 3명 —모두 합해서 251명과 그밖에 신심이 있는 청신사 여러분이 법당에 가득 앉았습니다.

비록 석 달 동안 정진하는 선방(禪房)의 위치는 몇 백 리 떨어져 있고, 몇 십 리가 떨어져 있지만,
우리는 전강 조실스님의 법문을 듣고, 조실스님의 법에 의해서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기 때문에 한 선방에서 다같이 정진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선원에 방부를 드리고 정진하는 스님의 인원 수를 낱낱이 말씀을 드린 것은,
사실은 그 스님네 이름까지 다 불러서 그래 가지고 한 도량에서 한 선방에서 석 달 동안을 정말 신심과 분심과 의단으로 석 달이 아니라 하루를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것과 같이, 그런 마음으로 석 달을 지내자고 하는 그런 결의를 다지기 위해서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정진이라하는 것이—죽비(竹篦) 치고 입선(入禪)하고, 입선하면은 입선 들어가자마자 꾸벅꾸벅 졸고, 그리고 방선(放禪)하면은 방선하자마자 잡담을 하고—그렇게 석 달을 지내 가지고서는 우리는 팔만사천 세를 선방에 앉았다 해도 우리에게는 깨달음은 오지 아니할 것입니다.

우리가 부득이 해서 결제 동안에 입방선 시간을 정하고 죽비를 치고 하지만은,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다지기 위해서 그런 시간에 그런 형식을 취하지만은,
정말 무상(無常)을 깨닫고 정말 알뜰히 정진하는 사람은 결제∙해제가 따로 있을 수가 없고, 입선∙방선 시간이 따로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입선 시간에는 정말 알뜰하게 정신 차려서 화두를 들고, 방선을 하더라도 입선 때 못지 않게 더욱 성성(惺惺)한 마음으로 화두를 들고, 화장실에 갔다 나오더라도,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화두가 성성하게 들려있도록 그렇게 단속(團束)을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석 달 동안을 어떻게 지냈느냐에 따라서 석 달 동안의 안거(安居)가 정말 우리의 수행에 정말 크게 증진(增進)을 가져 올 것이고, 그럭저럭 지내다 보면 석 달은 아무 우리의 정진에 보탬이 되지 않는 그런 허송 세월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생사(生死)가 한 호흡지간(呼吸之間)에 있다’고 하는 말씀을 정말 가슴속 깊이, 뼛속 깊이 그것을 항상 잊지 아니해야 할 것입니다.

‘한 생각’을 올바르게 단속한 사람은 하루를 올바르게 지낼 것이고,
‘한 생각’을 올바르게 단속한 사람은 한 달을 옳게 지낼 것이고,
‘한 생각’을 옳게 단속한 사람은 석 달 동안도 정말 우리의 깨달음, 해탈하는 정진에 크게 보탬이 될 것입니다.

한 생각 한 생각이 바로 1년이 되고, 3년이 되고, 무량겁(無量劫)이 되는 것입니다.

정말 정진을 알뜰히 할 줄 아는 사람은 그 ‘한 생각을 어떻게 단속하느냐’가 거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삼계진로여해활(三界塵勞如海闊)이요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로다
나~무~아~미~타~불~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하야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삼계진로(三界塵勞)가 여해활(如海闊)이요,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 — 삼계(三界)의 윤회하고 삼계를 살아가는 그 티끌 수고로운 것이 마치 바다와 같이 한량(限量)이 없고, 넓고 넓다.

무고무금요괄괄(無古無今鬧聒聒)이다. 옛날도 없고 지금도 없고 시끄럽고 버글버글 하다.
온 세계가 지금 말세가 되어가지고 도처가 싸움을 하고 있고, 시비(是非)가 가라앉지 않고 버글버글 하고 있는데,
우리도 비록 불법을 믿고 그럭저럭 지낸다면은 그러한 삼계(三界) 진로(塵勞) 속에서 우리도 그 한 일원으로서 허송세월(虛送歲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말, 진향자가심념생(盡向自家心念生) — 우리가 육도법계(六途法界)의 생사윤회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 생사해탈을 할 것인가?

일어나는 한 생각 — 우리는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볼 때, 귀를 통해서 어떠한 소리를 들을 때, 그 찰나찰나에 그리 가지 말고, 바로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 ‘이뭣고~?’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해가 뜨고 달이 지나, 바람이 불고 새가 우나, 일체처 일체시가 나로 하여금 화두를 들게 하는 채찍이 되어줄 것입니다.

그렇게 한 생각 한 생각을 단속을 하고 나가면,
일념불생도해탈(一念不生都解脫)이다, 한 생각 나지 아니하여 그 생사 속에서, 변화 속에서 자기 해탈길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활구참선이라 하는 것은 화엄경(華嚴經)이나 법화경(法華經) 그런 책을 읽어 가지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루, 1시간,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눈을 통해서 보기도 하고, 귀를 통해서 듣기도 하고, 코를 통해서 냄새 맡기도 하고, 혀를 통해서 맛을 보지마는 그 찰나찰나를 그리 쫓아가지 말고,
‘이뭣고~?’를 챙기고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 ‘어째서 판치생모(板齒生毛)라 했는고?’ 자기의 본참화두(本參話頭)를 거각(擧却)하는 바로 거기에 정말 깨달음의 길이 거기에 통하는 것입니다.

산승이 오늘 삼동 결제일을 맞이해서 도반 여러분께 간곡히 이 말씀을 드리고 법상에서 내려가고자 합니다.(처음~15분23초)(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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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법계진시비로사~’ ; 성철스님 ‘납자십게(衲子十偈)’에서 '하심(下心)' 참고.
*육도법계(六道法界) ; 육도(六道)의 세계. 육도(六道).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毘盧遮那)는 vairocana의 음사(音寫).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빛과 지혜의 빛이 세상을 두루 비추어 가득하다(光明遍照,遍一切處,日)는 뜻.
①진리 그 자체인 법신(法身)을 형상화한 것. 비로자나 법신불(毘盧遮那 法身佛)
②대일여래(大日如來)와 같음.
*중생(衆生) ; ①생존하는 것. 목숨이 있는 것. 산것. 살아있는 것. 특히 인간. 사람들. 세상 사람. 유정(有情)이라고도 함. ②번뇌에 얽매여 미혹한 모든 존재. ③부처가 될 수 있는 요소. 본질.
*흥망성쇠(興亡盛衰) ; 흥하고 망함과 성하고 쇠함. 곧 어떤 사물·현상이 생겨나서 소멸하는 전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좌왕우왕(左往右往)하다 ; (사람이)올바른 방향을 잡거나 차분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다.
*적광전(寂光殿) ; 대적광전(大寂光殿).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로 모신 법당. 비로자나불의 정토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는 깊은 선정(禪定)과 지혜의 빛으로 충만하므로 대적광전(大寂光殿)으로 일컬음.
대광명전(大光明殿)·화엄전(華嚴殿)·비로전(毘盧殿)이라고도 한다.
*장엄(莊嚴 엄숙할•삼가할•꾸밀 장,엄할•공경할•꾸밈 엄) ; ①좋고 아름다운 것으로 국토를 꾸미고, 훌륭한 공덕을 쌓아 몸을 장식하고, 향이나 꽃 따위를 부처님께 올려 장식하는 일.
②건립하는 것. 건립. 훌륭히 배치, 배열되어 있는 것.
③장식. 물건을 장식하는 것. 아름답게 장식함. 훌륭한 것. 엄숙하게 장식된 모양, 모습. 장식물.
*삼동(三冬) ; 겨울철의 석 달.
*산승(山僧) ; 스님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의단(疑團 의심할 의, 덩어리 단) ; 공안•화두에 대한 알 수 없는 의심(疑心)의 덩어리(團).
*여법(如法) ; 부처님의 가르침에 맞음.
*선방(禪房) ; ①참선(參禪)하는 방. 선실(禪室)과 같은 말. ②‘선방에 간다’라는 말은 ‘참선하러 절에 간다’ 또는 ‘참선에 들어간다’라는 표현이다.
*활구참선(活句參禪) ; 선지식으로부터 화두 하나를 받아서[본참공안],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꽉 막힌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해 나가 화두를 타파하여 견성성불(見性成佛)하는 참선법(參禪法). 참선을 하려면 활구참선을 해야 한다.
참선의 다른 경향으로 사구참선(死句參禪)이 있는데, 사구참선은 참선을 이론적으로 이리저리 따져서 분석하고, 종합하고, 비교하고, 또 적용해 보고, 이리해서 화두를 부처님 경전이나 조사어록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여 이론적으로 따지고 더듬어서 알아 들어가려고 하는 그러한 참선인데, 이것은 죽은 참선입니다.
1700공안을 낱낱이 그런 식으로 따져서 그럴싸한 해답을 얻어놨댔자 중생심이요 사량심이라, 그걸 가지고서는 생사해탈은 못하는 것입니다.
생사윤회가 중생의 사량심(思量心)으로 인해서 일어난 것인데 사량심을 치성하게 해 가지고 어떻게 생사를 면할 수가 있겠습니까?
*용맹정진(勇猛精進) ; 견고한 의지로 한순간도 불방일(不放逸)하는, 열심으로 노력하는 정진.
*죽비(竹篦 대나무 죽,빗치개•통발 비) ; 예불이나 참선 정진할 때 이 죽비를 손바닥에 쳐서 소리를 내어 시작과 끝을 알리는데 쓰는 불교 용구.
*입선(入禪) ; 참선 수행(좌선)에 들어가는 것, 좌선(坐禪)을 시작하는 것. 참선(좌선)수행.
*방선(放禪) ; 좌선을 하거나 불경을 읽는 시간이 다 되어 공부하던 것을 쉬는 일. 몸을 쉬는 가운데서도 마음은 항상 본참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무상(無常) ; 모든 현상은 계속하여 나고 없어지고 변하여 그대로인 것이 없음. 온갖 것들이 변해가며 조금도 머물러 있지 않는 것. 변해감. 덧없음. 영원성이 없는 것.
*성성(惺惺) ; ①정신이 맑고 뚜렷함. 정신을 차림. 총명함. ②깨달음.
*단속(團束) ; ①주의를 기울여 다그쳐 보살핌. ②규칙, 법령, 명령 등을 어기지 않게 통제함.
*안거(安居 편안할 안,있을 거) ; (산스크리트) varsa 원뜻은 우기(雨期). ① 인도의 불교도들은 4월 15일(또는 5월 15일)부터 3개월 간 우기(雨期)때에 외출하면 풀이나 나무,작은 곤충을 모르고 밟아 죽일까 두려워 했고 그래서 동굴이나 사원에 들어가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것을 우안거(雨安居)라고 한다. ② 선종(禪宗)에서는 음력 4월 15일부터 7월 15일까지를 하안거(夏安居), 10월 15일부터 다음해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라고 해서 각각 90일간 사원에 머물르면서 외출을 금지하고 오로지 좌선을 중심으로 한 수행에 전념한다. 처음을 결제(結制), 끝을 해제(解制)라 한다.
*무량겁(無量劫) ;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시간이나 끝이 없는 시간. 劫과 刧는 동자(同字).
*(게송) ‘삼계진로여해활~’ ; 중봉명본(中峰明本) 스님의 「天目中峰和尚廣錄」 제27권(上) ‘경책가(警策歌)’ 참고.
*삼계(三界) : [범] trayo-dhatavah 중생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세 가지로 나누는데,
①욕계(欲界 Kamadhatu) : 음욕(婬欲) • 식욕(食欲) • 재욕(財欲) 같은 탐욕이 많아서, 정신이 흐리고 마음이 험악하며, 순전히 물질에 속박되어 가장 둔탁한 중생들이 사는 낮은 세계.
②색계(色界 rupadhatu) : 욕계 위로 욕심은 매우 적으나 성내는 버릇이 남아 있어, 물질의 지배를 아주 벗어나지 못한 중생들이 사는 비교적 맑은 세계. 색(色)은 곧 물질이란 뜻이다.
③무색계(無色界 arupadhatu) : 맨 위층으로 탐욕과 성냄은 떨어져서 물질의 영향은 받지 않으나, 「나(我)」를 버리지 못하여 정신상으로 걸림이 남아 있는 깨끗한 중생들이 사는 높은 세계.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진로(塵勞 티끌·속세 진,근심할 로) ; 마음이나 몸을 괴롭히는 노여움이나 욕망 따위의 망념(妄念). 번뇌(煩惱).
*허송세월(虛送歲月) ; 하는 일 없이 세월을 헛되이 보냄. 또는 그 세월.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뭣고(是甚麼 시심마,시삼마) : ‘이뭣고? 화두’는 천 칠백 화두 중에 가장 근원적인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육근(六根) • 육식(六識)을 통해 일어나는 모든 생각에 즉해서 「이 무엇고?」(이뭣고?)하고 그 생각 일어나는 당처(當處)를 찾는 것이다.
*무자(無字) : 화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스님께 묻되 「개도 불성(佛性)이 있읍니까 없읍니까?」하니, 조주스님이 답하되 「무(無)」라 하시니 「준동함령(蠢動含靈)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고?」하는 참선할 때 참구(叅究)하는 천 칠백 공안 중의 하나.
[참고]  [언하대오(言下大悟)] (용화선원) p52~53 에서.
‘무자’ 화두하는 학자들이여, 조주 스님의 “무” 라고 하신 그 의지가 “무” 에 있는 것이 아니다.  기실(其實) 엉뚱한 곳에 있는 것이니 제발 조주 스님의 뜻을 찾으려고 애쓸지언정  ‘무자(無字)’에 떨어져서 광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재삼 부탁하노라.
 이 ‘무자’ 화두 지어감에 좋은 비유 설화가 있으니 옛날 중국 당나라에 천하일색인 양귀비가 있었는데 당 현종의 애첩으로 궁성에 살고 있었다.
 이 양귀비와 정부 안록산은 서로가 보고 싶어 못 견딜 지경이었다.

    빈호소옥무타사(頻呼小玉無他事)라
    지요단랑인득성(只要檀郞認得聲)이로다

    자주 소옥이를 부르는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다못 낭군에게 소리를 알리고자 함이로다.

양귀비는 자기의 종인 소옥을 아무 할 일 없이 큰 소리로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꾸 부른다.  왜 양귀비는 소옥을 그렇게 부를까?  다만 낭군에게 자기의 음성을 들리게 하기 위함이다.
 양귀비의 뜻이 소옥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소옥을 통해서 자기의 음성을 안록산에게 알리는데 본 뜻이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자’ 화두는 ‘무자’ 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무”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에게 뜻이 있는 것이니, ‘무’라는 말을 천착(穿鑿)하지 말고 “무” 라 말씀하신 조주 스님의 의지를 참구할지니라.
*판치생모(板齒生毛) ; 화두(공안)의 하나.
어떤 스님이 조주 스님께 묻되, “어떤 것이 ‘조사서래의’입니까?  (如何是祖師西來意)”하니 답하시되, “판치생모(板齒生毛)니라.” 하셨다. 즉,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판치에 털이 났느니라.」라고 하는 화두.
그러면 조주 스님은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을까?  이 화두도 ‘무자’ 화두와 같이 ‘판치생모’에 뜻이 있는 것이 아니고 “판치생모” 라고 말씀하신 조주 스님께 뜻이 있는 것이니, 학자들은 꼭 조주 스님의 뜻을 참구해야 한다. “어째서 ‘무’라 했는고?” 하는 것과 “어째서 ‘판치생모’라 했는고?” 하는 것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것이다. [언하대오(言下大悟)에서] (용화선원) p53.
*거각(擧却 들 거,어조사 각) ; 화두를 든다.

Posted by 닥공닥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