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5) (게송)수류상출몰~ / 정념(正念), 화두 놓치면 삿된 생각 / 증애심, 무연자비(無緣慈悲) / 탐진치의 불 / 아상을 승화해 세계를 한 식구로 만드는게 불법(佛法).

삿된 생각이 따로 없어. 무슨 외도(外道)한테 빠져 가지고 외도 짓을 하는 것만 그것이 삿된 생각이 아니라, 불법을 믿고 선방에서 참선을 하고 있어도 화두 놓쳐 버리고, 오고 가고 일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화두를 놓치면 그것이 벌써 삿된 생각에 떨어진 것이다.
한 생각 퍼뜩 시비심·취사심·차별심이 일어났다 하면은 정념을 놓치게 되고, 정념을 놓치면은 사심(邪心)에 떨어지고, 사심에 떨어지면 바로 집착을 하게 된 것이다.


미운 생각이 일어나면은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어. 정진을 여법하게 해가다 보면 차츰차츰 증애심이 담박(淡泊)해지고 결국은 증애심이 없어. 증애심이 없어야 무연자비(無緣慈悲)를 행할 수가 있는 것이여.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끝없이 타고 있는 불 때문에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 것.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사상에 의해서 살아가고 다스려가지 않고서는 세계평화는 이루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열심히 도를 닦아야 합니다.


**송담스님(No.455) - 91년 9월 첫째일요법회(91.09.01)에서. (용455)


약 15분.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하되  불체왕래종(不滯往來蹤)이니라
나무~아미타불~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하고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니라
나무~아미타불~

수류상출몰(隨流常出沒)하되  불체왕래종(不滯往來蹤)이다.
흐름을 따라서 인연을 따라서 항상 나고 들어오되, 가고 오고 나오고,

이 선방에서 지내고 또 해제하고 저 선방에를 가는 것도 항상 이렇게 출몰(出沒)하는 것이고,
문밖에 나가고 방안으로 들어오는 것도 출몰이고,
금생에 인연이 다해서 이 몸을 버리고 다음 생에 다시 또 새 몸을 받아 난 것도 이것도 출몰하는 것이고,

한 생각이 일어났다 또 그 한 생각이 꺼지고, 다시 한 생각이 또 새로 일어났다가 그 생각이 없어지고 한 것도 이것도 상출몰(常出沒)이다 그말이여.
아침에 일어났다가 밤에 자는 것도 상출몰(常出沒)이요.
끼니가 되면 밥을 먹고 때가 되면은 화장실에 가고 하는 것도 이것도 상출몰(常出沒)이여.

일체처 일체시에 오고가고 하는 것이 다 출몰인데 그런 것은 인연(因緣) 따라서 해.
결제 때는 결제 때대로, 해제 때는 해제 때대로 인연 따라서 하되,

불체왕래종(不滯往來蹤)이여. 오고 가고 앉고 서고 하는 그 발자취에 막히지 말아라.
'막힌다'고 하는 것은 집착을 하는 것을 말하는 거여. 집착을 하는 데에서 정념(正念)을 놓치게 되는 것이여.
삿된 생각과 바른 생각이 있는데, 집착을 하거나 자기가 들고 있는 본참화두(本參話頭)를 놓쳐버린 것이 그것이 바로 삿된 생각에 떨어진 것이다 그말이여.

삿된 생각이 따로 없어.
무슨 외도(外道)한테 빠져 가지고 외도 짓을 하는 것만 그것이 삿된 생각이 아니라, 불법을 믿고 선방에서 참선을 하고 있어도 화두 놓쳐 버리고, 오고 가고 일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黙動靜) 간에 화두를 놓치면 그것이 벌써 삿된 생각에 떨어진 것이다 그말이여.

일체 경계(境界)에 집착하면 나쁜 생각에 떨어져도 삿된 생각이지만, 좋은 일 계행(戒行)을 지키면서도 그 계상(戒相)에 집착하면 벌써 그것이 삿된 생각이다 그말이여.

그것이 왜 그러냐 하면은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사람이 화두 놓쳐버리면은 그것이 바로 삿된 생각이요. 모든 것에 집착을 하면 그것이 바로 맥히는 것이여.
무슨 나쁜 음식을 먹고 배탈난 것만 병이 아니라, 좋은 음식을 먹고도 체하면 그것이 병이거든. 맹물을 마시고도 그것이 잘못 마시면 그것이 체하면 약이 없다는 것이여.

정법(正法)을 안 믿는 사람에게는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가르키지만, 아! 정법 믿는 사람은 나쁜 짓을 하라고 해도 안 해.
그러면 정법을 믿는 사람에게는 무엇이 잘못된 것이냐 하면은, 일체 생각에, 일체 일에 사물에 집착한 것이 바로 그것이 삿된 생각이다 그말이여.

두두무취사(頭頭無取捨)여. 머리머리 모든 사물에 대해서 취사(取捨)를 하지 말아라. 취하고 버려.
제 마음에 든 것은 취하고, 제 마음에 안 든 것은 버리고, 그 취사심은 바로 차별심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그 취사심·차별심으로 인해서 온갖 시비가 거기서 일어나고,

한 생각 퍼뜩 시비심이나 차별심이 일어났다 하면은 정념을 놓치게 되고, 정념을 놓치면은 사심(邪心)에 떨어지고, 사심에 떨어지면 바로 집착을 하게 된 것이다 그말이여.

처처절소친(處處絶疎親)이라. 중생들은 자기 마음에 든 사람하고는 가까이하고 친하고 싶고, 자기 비위에 안 맞고 자기 뜻에 안 맞은 사람은 그 사람은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이다 그말인데, 이 정법을 믿고 참선하는 사람은 친하고 친하지 않고 하는 생각이 끊어져 버려야 해. 누구나 다 평등해. 특별히 친할 것도 없고, 특별히 미워할 것도 없고.

증애심(憎愛心)이 강한 사람은 도 닦아 가는데 참 어려운 것이여. 그래서 보조(普照) 스님의 그 법문을 보면은 자기의 수행이 얼마만큼 되어갔는가를 스스로 증험하는 방법으로 증애심이 어떠한가로써 점검을 해 보라 그랬어.

증애심이 강한 사람은 그 사람은 도를 제대로 닦고 있는 사람이 아니여. 도를 열심히 닦는 사람은 증애심이 없어.
우리가 부처님이 다 되기 전에는 증애심이 완전히 없을 수는 없어. 그러나 퍼뜩 미운 생각이 일어나면은 단전호흡을 하면서 화두를 들어. 정진을 여법하게 해가다 보면 차츰차츰 증애심이 담박(淡泊)해지고 나중에 결국은 증애심이 없어.

증애심이 없어야 무연자비(無緣慈悲)를 행할 수가 있는 것이여.

우리가 ‘자비심(慈悲心)이다’ ‘자비심이다’해 가지고 마음에 든 사람에게는 무엇을 많이 주고 잘 주고, 자기가 미운 사람에게는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도 미운 놈한테는 재산도 많이 안 줄라고 그러거든. 이러한 증애심이 마음속에 농후하게 있는 사람은 세상 살아가는데 원결(怨結)이 많고, 도를 닦아가는 데에도 장애가 많아.

그래서 취사심(取捨心)이 일어나면 그놈을 떼어 내버릴라고 하지 말고 바로 화두를 들고, 또 증애심(憎愛心)·친소심(親疎心)이 일어나더라도 퍼뜩 그 증애심을 돌이켜서 화두를 들어나가면, 취사심을 띨려고 하지 안 해도 저절로 취사심이 담박(淡泊)해지고, 증애심을 억지로 띠어 내버릴려고 안 해도 저절로 증애심이 담박해지는 법이여.

부처님께서 성불을 하셔가지고 녹야원(鹿野苑)으로 가셔서 교진여(橋陣如) 등 다섯 비구를 제도하시고, 그리고 차츰차츰 그 다섯 비구들에 의해서 제자들이 자꾸 불어나고 그랬는데, 한 천 명 가량 제자가 되었을 때 부처님이 도(道)를 이루시던 정각산(正覺山)에 한번 가셨습니다.

가서 천 명의 제자와 더불어 그 산봉우리에 올라가지고, 당신이 공부하시던 곳-그 사위성(舍衛城)·왕사성(王舍城) 모다 그런 도시를 보시면서 그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온 세계가 불 훨훨 타고 있구나. 그 불이 훨훨 타 들어오는구나. 그 불이 무슨 불이냐 하면은 탐욕(貪慾)의 불이요, 진심(瞋心)의 불이요, 어리석음의 불이 이렇게도 훨훨 타 들어오는구나.』 이러한 법문을 하셨습니다.

그 산상(山上)의 법문이라 해서 참 널리 알려진 법문인데, 우리가 육도윤회(六道輪廻)를 하는 것도 이 탐진치(貪瞋癡) 삼독(三毒)의 끝없이 타고 있는 불 때문에 육도윤회를 하고 있는 것이고,

지금 온 세계가 무서운 군사 무력을 증강을 하면서 도처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역사 이래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지금도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이러한 상황, 옛날에는 화살이나 칼로 싸우고 창으로 싸웠지만은 중간에 총이 나오고, 이제는 원자탄·수소탄 무슨 광선으로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많은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무기가 생겨나고, 이 지구덩어리도 가루를 만들어 버릴 수 있는 그런 무서운 무기들을 모다 마련해 가지고 지금 있는데,

이러한 전쟁이 그 원인을 살펴보면 결국은 탐진치 삼독 때문에 그렇다 그말이여.

개인적으로는 ‘내’라고 하는 아상(我相), '내 몸이다, 내 재산이다, 내 식구다, 내 집이다', ‘나’라고 하는 그 생각 때문이고, 그 생각이 결국은 자기만 잘 살라고 하는 생각, 자기만 편할라고 하는 생각,그것 그 생각 때문에 우리가 생명도 유지해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그 생각이 승화(昇華)되어서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로 마음을 써야 할 텐데, 남이야 죽거나 말거나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그런 생각 때문에 결국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이렇게 범위가 넓어지고 보면 좁게는 식구끼리 싸우고, 크게는 이웃 간에 싸우고, 회사끼리 싸우고, 더 커지면은 국가와 국가끼리 싸우게 됩니다.

그러한 생각을 승화(昇華)시켜서 온 세계를 한 나라로, 한 식구로 이렇게 만드는 길이 바로 부처님의 법(法)입니다.
부처님의 법에 의지해서,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사상에 의해서 살아가고 다스려가지 않고서는 세계평화는 이루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법(正法)에 의지해서 참 열심히 도를 닦아야 합니다.(22분26초~37분21초)

 

 



>>> 위의 법문 전체를 들으시려면 여기에서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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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송) ‘隨流常出沒  不滯往來蹤’ ; [천성광등록(天聖廣燈錄)] 卷25, 처인선사(蘄州靈泉山處仁禪師) 참고.
*(게송) ‘頭頭無取捨  處處絶疎親’ ; [가태보등록(嘉泰普燈錄)] 제17권, 월암선과선사(潭州大溈月庵善果禪師) 참고.

*인연(因緣) ; ①어떤 결과를 일으키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이 되는 인(因)과,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이 되는 연(緣). 그러나 넓은 뜻으로는 직접 원인이나 내적 원인, 간접 원인이나 외적 원인 또는 조건을 통틀어 인(因) 또는 연(緣)이라 함. ②연기(緣起)와 같음.
*집착(執着) ; 허망한 분별로써 어떤 것에 마음이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함. 그릇된 분별로써 어떤 것을 탐내어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함.
*정념(正念) ; 바른 생각. 선종(禪宗)에서의 바른 생각이란 이론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다못 알 수 없는 의심(疑心)으로 화두를 참구하는 한 생각(叅究一念).
*본참화두(本參話頭) ; 본참공안(本參公案). 생사(生死)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타파해야 할 자기의 화두(공안)로써 자기가 믿어지는 바른 선지식으로부터 받아서 참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외도(外道) ;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의 가르침. 또는 그 신봉자.
*경계(境界) ; ①인과(因果)의 이치(理致)에 따라서, 자신이 부딪히게 되는 생활상의 모든 일들. 생로병사•희로애락•빈부귀천•시비이해•삼독오욕•부모형제 춘하추동•동서남북 등이 모두 경계에 속한다.
②나와 관계되는 일체의 대상. 나를 주(主)라고 할 때 일체의 객(客). ③시비(是非)•선악(善惡)이 분간되는 한계.  경계(境界)에는 역경(逆境)과 순경(順境), 내경(內境)과 외경(外境)이 있다.

*계행(戒行) ; ①계() 지켜 수행하는 . 계율에 정해진 규칙을 성실하게 실천수행하는 . ②계율과 도덕.

*계상(戒相) ; ①계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4가지 분류[계사별 戒四別],  계법(戒法) · 계체(戒體) · 계행(戒行) · 계상(戒相) 하나. 계율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차별 있는 행동 양상. () 지키거나[持戒] 범한[破戒] 상태, 또는 계를 범한 경우 그에 대한 죄의 가벼움과 무거움 등의 차별된 상.

②계() (). 계율에 대한 생각.  계상(戒相) 청정성, 집착의 여부는 그것을 일으키는 주체에 따라 달라진다. [참고] 『화엄경』 60권본 10 14 명법품(明法品)(대정장9. p.460c)  계를 지킨다는 () 일으키지 않으므로 계에 집착함이 없다. 이것을 청정시바라밀이라 한다. 不生持戒相故  於戒無著  是名淸淨尸波羅蜜

*정법(正法) ; ①올바른 진리. ②올바른 진리의 가르침. 부처님의 가르침. ③부처님의 가르침이 올바르게 세상에 행해지는 기간.
*시비(是非) ; ①옳으니 그르니 하는 말다툼. ②이러니저러니 좋지 않게 트집을 잡아서 말함. ③옳고 그름.
*증애(憎愛) ; 사랑과 미움. 애증(愛憎).
*보조(普照) 스님 ; 분류 ‘역대 스님 약력’에서 '보조국사' 참고.
*보조(普照) 스님의 법문 ; [참고] 『진심직설(眞心直說)』 '眞心驗功 (진심 공부의 점검)'에서.
소를 치는 공부.
或曰 眞心現前 如何知是眞心 成熟無礙也.
어떤 이가 물었다. “진심(眞心)이 현전(現前)할 때, 어떻게 그 진심이 성숙하여 걸림이 없음을 압니까?”

曰 學道之人 得眞心現前時 但習氣未除 若遇熟境 有時失念.
나는 답하였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진심(眞心)이 앞에 나타났을(現前) 때에 아직 습기(習氣)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고 익숙했던 경계를 만나면 때로는 생각을 잃는 수가 있다.

如牧牛 雖調到牽拽隨順處  猶不敢放了鞭繩 直待心調步穩 赶趁入苗稼中 不傷苗稼 方敢撒手也. 到此地步 便不用牧童鞭繩 自然無傷苗稼.
그것은 마치 소를 치는 것과 같다. 즉, 비록 길이 잘 들여져서 이끄는 대로 따르게 되었더라도, 아직은 감히 채찍과 고삐를 풀지 않고, 좀더 기다려 마음이 잘 다스려지고 그 걸음이 순해져서 혹 곡식밭에 들어가더라도 곡식을 해치지 않게 되어야 비로소 손을 놓는 것과 같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목동이 채찍과 고삐를 쓰지 않더라도 자연히 곡식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如道人得眞心後 先且用功保養 有大力用 方可利生.
그와 같이 도인(道人)이 진심(眞心)을 얻은 뒤에 먼저 공(功)을 들여 보호하고 길러 큰 힘을 쓸수 있을 때, 비로소 중생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일지 않는가?
若驗此眞心時 先將平生所憎愛底境 時時想在面前  如依前起憎愛心 則道心未熟  若不生憎愛心 是道心熟也.
만약 이 진심(眞心)을 점검하려면 먼저 평상시에 미워했거나 사랑하던 대상을 가져다 때때로 면전(面前)에 있다고 생각해 보라. 만일 여전히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憎愛心)'이 일어나면 도의 마음(道心)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것이요, 만일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나지 않으면 그것은 도의 마음이 성숙한 것이다.

雖然如此成熟 猶未是自然不起憎愛  又再驗心 若遇憎愛境時 特然起憎愛心 令取憎愛境界 若心不起 是心無礙 如露地白牛 不傷苗稼也.
그러나 그렇게 성숙(成熟)하였더라도 그것은 아직도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지 않은 것은 못된다. 또 다시 마음을 점검하되, 만일 미워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만났을 때, 특히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 그 대상을 취하게 하여도 그래도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마음은 걸림이 없어, 마치 '한데에 놓아둔 흰 소[露地白牛]'가 곡식을 해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古有呵佛罵祖者 是與此心相應  今見纔入宗門 未知道之遠近 便學呵佛罵祖者 太早計也.
옛날에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꾸짖은 사람들은 이 마음과 상응(相應)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 보면, 겨우 종문(宗門)에 들어온 사람들이 아직 도의 멀고 가까움도 모르면서 곧 부처를 꾸짖고 조사를 꾸짖는 것만 배우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참마음 이야기(진심직설 강의)』 (지눌 저, 강건기 강의 | 불일출판사) p241~253.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보조국사어록』 (김달진 옮김 | 동화출판사) p138~139, 155 참고.
*진심(眞心) ; 허망을 여읜 것을 참[眞]이라 하고, 신령스럽게 밝은 것을 마음[心]이라 한다.(離妄名眞 靈鑑曰心) 우리 본래의 참 마음, 참 모습.
*담박(淡泊)하다 ; (사람이)욕심이 없고 순박하다.
*무연자비(無緣慈悲) ; 무조건의 자비(慈悲). 상대의 어떤 것도 묻지 않고, 일체 평등으로 구제하는 자비심. 일체 평등의 이치를 깨달아 상대의 상(相:모습)을 가리지 않고 행하는 자비. 무연(無緣)이란 진여평등(眞如平等)의 이치를 깨달아 중생의 본체(本體)가 허망하다는 것을 알고 일으키는 자비.
*자비(慈悲) : [범] maitri  자비는 사랑하는 것과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네 가지 끝없는 마음(四無量心) 가운데 두 가지이다。모든 중생에게 실제로 즐거움을 주는 것을 「자(慈)」라 하고(慈能與樂), 중생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 주며 근본적으로 그 근심 걱정과 슬픔의 뿌리를 뽑아 내어 주는 것을 「비(悲)」라고 한다(悲能拔苦).
*원결(怨結 원망할 원,맺을·번뇌 결) ; 원망(怨望)의 마음이 얽혀 풀리지 않는 것을 말함.
*녹야원(鹿野苑) ; 석가(釋迦)가 35세에 성도(成道)한 후 최초로 설법을 개시한 곳이며, 이때 교진여(僑陳如) 등 5명의 비구(比丘)를 제도(濟度)하였다.
갠지스 강 중류, 지금의 바라나시(Varanasi, 베나레스 Benares)에서 북동쪽 약 7㎞ 지점에 있는 사르나트(Sarnath)의 유적이 곧 녹야원의 터. 사슴동산(녹야원), 즉 사르나트(Sarnath)는 산스크리트어로 ‘사슴의 왕’을 뜻하는 ‘사란가나타(Saranganatha)’가 줄어든 말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이룬 우루벨라(uruvelā) 마을의 붓다가야(buddhagayā)에서 녹야원까지는 직선 거리로 약 200㎞됨.
탄생(誕生:룸비니) ·성도(成道:붓다가야) ·입멸(入滅:쿠시나가라)의 땅과 더불어 불교(佛敎) 4대 성지의 하나.
*산상(山上)의 법문 ; [참고]  『잡아함 시현경(示現經)』에서.
"비구들아,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이른바 눈(眼)이 불타고 있고, 물질(色)과 안식(眼識)과 안촉과 안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귀·코·혀·몸도 마찬가지이며, 이와 같이 뜻(意)도 불타고 있고, 법(法)과 의식(意識)과 의촉과 의촉을 인연하여 생기는 느낌, 즉 괴로운 느낌·즐거운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도 또한 불타고 있다.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는가? 탐욕의 불로 불타고 있고, 성냄의 불로 불타고 있으며, 어리석음의 불로 불타고 있고,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의 불로 불타고 있느니라."
*탐(貪) ; 자기의 뜻에 잘 맞는 사물에 집착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진(瞋) ; 자기의 마음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하여 분하게 여겨 몸과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게 되는 번뇌이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치(癡) ; 현상이나 사물의 도리를 이해하지 못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는 번뇌를 이른다. 육번뇌[六煩惱-탐(貪)·진(瞋)·치(癡)·만(慢)·의(疑)·악견(惡見)의 여섯 가지 근본 번뇌]의 하나.
*삼독(三毒) ; 사람의 착한 마음(善根)을 해치는 세 가지 번뇌. 욕심, 성냄, 어리석음(貪,瞋,癡) 따위를 독(毒)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육도윤회(六途輪廻, 六道輪廻) ; 선악(善惡)의 응보(應報)로 육도(六途-지옥,아귀,축생,아수라,인간,천상)의 고락(苦樂)을 받으면서 죽음과 삶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것.
*아상(我相) ; 산스크리트어 ātma-saṃjñā 나라는 관념·생각.  자아(自我)라는 관념·생각.  자의식.  남과 대립하는 나라는 관념·생각.  실체로서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는 망상.
*승화(昇華) ; 어떤 현상이 한 단계 더 높은 영역으로 발전함.

Posted by 닥공닥정